신학 철학 에세이

강단 방언 — 교회 안에서만 통하는 말은 왜 교회를 고립시키는가

폭언으로 사임한 목사가 반년 만에 원로가 되고 다른 교회 강단에 섰습니다. 교회 안에서만 통하는 말을 「강단 방언」이라 부르고, 국회의원 면책특권·축구협회 사건과 견주어 왜 교회가 고립되는지 적었습니다.

기사 하나를 읽다가

며칠 전 기사 하나를 읽었습니다. 올해 2월 부교역자들에게 상습적으로 욕설을 한 녹취가 공개되어 담임목사직을 내려놓은 분이, 10월 첫 주일에 다른 대형교회 강단에서 설교했다는 기사였습니다. 그 설교에는 "뚱뚱한 설교자는 보면 은혜가 안 된다", "뚱뚱한 여자들은 회개할지어다" 같은 말이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이 분을 모릅니다. 이 글은 그분 개인을 두고 쓰는 글이 아닙니다. 제가 멈춘 곳은 다른 데였습니다. 그 말이 나왔을 때 예배당에서는 웃음이 나왔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같은 말이 예배당 밖으로 나오자 기사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같은 문장이 안에서는 입담이고 밖에서는 막말입니다.

이 차이에 이름을 붙여 보려고 합니다.

1. 올해 한 교회에서 일어난 일

먼저 사실부터 적겠습니다. 모두 보도된 내용입니다.

  • 2월 21일. 한 교계 언론이 교역자 회의 녹취를 보도했습니다. 담임목사가 여성 부교역자에게 "도끼로 대가리 찍어 버릴까"라고 하고, 회의에 늦은 부교역자에게 "대가리 똥칠을 하고 살아"라고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2012년부터 2024년까지 그 교회를 떠난 부교역자 여럿이 영적 학대와 우울증을 말했습니다.
  • 2월 26~28일. 그는 교단 부총회장직과 담임목사직을 내려놓았습니다. 당회는 피해자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미안함"을 전한다고 밝혔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아는 순서입니다. 잘못이 드러나면 물러나고, 사과하고, 공동체가 진상을 밝힙니다.

그다음은 우리가 모르는 순서였습니다.

  • 3월 22일. 공동의회에서 원로목사 추대안이 가결되었습니다. 찬성 89.6%였습니다.
  • 3월 23일. 호텔에서 전 부교역자들 앞에 무릎 꿇고 사과했습니다. 위로금이 전도사 300만 원, 부목사 500만 원 안팎으로 지급되었습니다. 기자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 4월 19일. 사임 두 달 만에 강단에 돌아와 예배 사회를 맡았습니다.
  • 5월 3일. 그가 직접 추천한 사람이 후임 목사로 결정되었습니다. 찬성 93.4%였습니다.
  • 8월 26일. 3,000명이 모인 가운데 원로목사 추대식이 열렸습니다.
  • 10월 4일. 다른 대형교회 강단에서 앞에 적은 설교를 했습니다.

두 장면을 잇는 것은 한 사람의 입버릇이 아닙니다. 그 입을 계속 강단에 세워 준 공동체의 귀입니다.

2. 강단 방언

이 현상을 저는 강단 방언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강단 방언은 교회 안에서만 통하는 말의 체계입니다. 교회 밖에서는 폭언이나 혐오 발언으로 들릴 말이 강단에서 나오면 "구수한 입담"이 되고 "은혜로운 직언"이 됩니다. 이 말을 쓰는 공동체는 바깥의 귀를 잃고, 자기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 모르는 채 고립됩니다.

방언은 원래 성령의 은사입니다. 오순절의 방언은 서로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 말로 알아듣게 한 사건이었습니다(행 2:6). 강단 방언은 그 반대입니다. 안에 있는 사람만 알아듣습니다. 밖에 있는 사람은 알아듣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모욕으로 듣습니다.

강단 방언은 세 단계로 작동합니다.

첫째, 강단이 면책의 자리가 됩니다. 같은 말을 회사 회의실에서 했다면 징계를 받습니다. 방송에서 했다면 하차합니다. 그런데 강단에서 하면 "아멘"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가장 엄격해야 할 곳인데, 그 무게가 오히려 말하는 사람을 지켜 주는 방패가 됩니다.

둘째, 공동체의 귀가 닫힙니다. 기사에 나온 전 부교역자의 말이 이렇습니다. "공공연한 사실인데… 장로님들이 모르겠나, 교인들이 모르겠나. 다 안다." 다 알았는데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사회학자 다이앤 본은 챌린저호 참사를 분석하면서 이것을 "일탈의 정상화"라고 불렀습니다. 규칙 위반이 되풀이되고 그때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조직은 그것을 위반으로 보지 않게 됩니다. 녹취가 공개된 뒤에도 원로 추대에 찬성한 1,631표가 그 깊이를 보여 줍니다.

셋째, 바깥의 비판은 박해로 번역됩니다. 언론이 보도하면 "교회를 흔드는 세력"이 되고, 시민단체가 조사를 요구하면 "세상의 잣대"가 됩니다. 사회학자 피터 버거는 어떤 믿음이 그럴듯하게 유지되려면 그것을 함께 믿어 주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강단 방언은 그 공동체가 바깥과 완전히 끊긴 상태입니다. 안에서는 모든 것이 그럴듯하고, 밖에서는 아무것도 그럴듯하지 않습니다.

3. 국회의원은 면책을 받는데, 목사는 왜 안 되는가

"강단이 면책의 자리가 된다"는 말에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도 국회 안에서 한 말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강단도 그런 자리 아니냐는 것입니다.

헌법 제45조는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한 발언에 관해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정합니다. 그런데 이 특권의 목적을 보면 비유가 뒤집힙니다. 면책특권은 약한 쪽이 강한 쪽을 비판할 수 있게 만든 제도입니다. 의원 개인이 행정부와 수사기관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울타리도 있습니다. 국회 안에서, 직무상 한 말에만, 국회 밖의 법적 책임만 면제됩니다. 국회 안에서 남을 모욕하면 윤리특별위원회가 징계합니다. 회의록은 공개되고 4년마다 선거로 심판받습니다.

강단 면책은 모든 면에서 반대입니다.

  • 방향이 거꾸로입니다. 강한 쪽(담임목사)이 약한 쪽(부교역자, 교인)에게 하는 말을 보호합니다.
  • 울타리가 없습니다. 문제의 녹취는 설교가 아니라 교역자 회의였습니다. 사임 뒤에는 원로목사라는 직함을 달고 다른 교회 강단에 올랐습니다. 면책이 자리가 아니라 사람에게 붙어 다닙니다.
  • 심판이 없습니다. 위임목사에게는 임기가 없습니다. 이번에 공동의회 표결은 견제가 아니라 지지 확인으로 쓰였습니다.

국회의원 면책특권은 권력에 맞서 말할 자유를 지키려고 울타리를 친 제도입니다. 강단 면책은 권력이 아래로 내리치는 말을 울타리 없이 감싸 주는 관행입니다.

4. 축구협회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교회만 이런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시기에 같은 순서로 무너진 조직이 있습니다. 대한축구협회입니다.

2024년 7월 협회는 홍명보 감독을 선임했습니다. 추천 권한이 없는 이사가 혼자 면접하고 추천했습니다. 다음 날 위원 한 사람이 "선임을 몰랐다"고 폭로하자 협회는 비밀유지서약 위반이라며 법적 대응을 검토했습니다. 국회 현안질의, 문체부 감사(위법·부당 27건), 법원 판결(감사 적법), 회장 사퇴, 그리고 올해 9월 경찰이 전 회장 등 세 사람을 이사회에 허위자료를 낸 혐의로 검찰에 넘기는 데까지 2년이 걸렸습니다. 누가 왜 밀어붙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교회 사건과 겹쳐 보면 같은 습관이 일곱 가지 보입니다.

축구협회교회
절차는 형식이다위원회와 이사회가 있었지만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당회와 공동의회를 거쳤지만 결론은 원로 추대였다
고발자는 배신자다폭로한 위원에게 서약 위반을 들이댔다녹취가 바깥에 나가고서야 문제가 되었다
사람이 제도보다 앞선다국가대표 출신이라는 상징27년 담임목사라는 존재감
바깥 감시는 간섭이다감사에 소송으로 맞섰다전수조사 요구에 답하지 않았다
성과가 절차를 덮는다13년의 성과400명에서 7,500명으로
물러나도 명예는 지킨다"때로는 기대에 부응했다"원로 추대와 강단 복귀
진상은 비어 있다"누가 왜"가 없다피해 규모가 없다

그런데 끝이 다릅니다. 축구협회는 회장 사퇴와 형사 절차로 끝났고, 교회는 원로목사 추대로 끝났습니다.

차이는 바깥의 망치입니다. 축구협회는 공공적 단체여서 국회, 정부, 법원, 경찰이 차례로 두드렸습니다. 교회는 종교의 자유로 보호받는 자율 공동체입니다. 바깥에서 두드릴 수 있는 것은 언론뿐이고, 안의 장치인 노회 권징은 이번에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교회는 국회도, 감사도, 경찰도 없는 축구협회입니다. 폐쇄성은 같은데 바깥에서 두드릴 망치가 없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스스로를 고치려면 축구협회보다 더 엄격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세상보다 느슨해도 되는 곳이 아니라, 세상보다 엄격해야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5. 속이 빈 소리

제가 쓰고 있는 책의 결론 제목은 「속이 빈 소리를 듣는 법」입니다. 니체의 『우상의 황혼』 서문에서 가져왔습니다. 니체는 우상을 망치로 두드려 보겠다고 썼습니다. 부수려는 것이 아닙니다. 소리굽쇠로 치듯 가볍게 두드려, 속이 빈 우상이 내는 "저 유명한 속 빈 소리"를 들어 보려는 것입니다.

강단 방언은 바로 그런 소리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꽉 찬 소리로 들립니다. 웃음이 있고, 박수가 있고, 아멘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밖에서 한 번만 두드려 보면, 그러니까 녹취가 기사가 되고 설교 영상이 인용되면, 그 말은 텅 빈 소리를 냅니다. 그 안에는 복음도, 이웃 사랑도, 약한 자에 대한 배려도 없습니다. 남는 것은 힘 있는 자의 말버릇과 그 말버릇을 은혜라고 불러 준 청중뿐입니다.

니체가 기독교를 비판하며 겨눈 과녁이 대개 이것이었습니다. 기독교 자체보다, 약자를 위한다는 말로 실제로는 힘을 지키는 위선이었습니다. 한국교회가 니체에게 답하려면 먼저 그 망치를 자기 강단에 대 보아야 합니다. 밖에서 두드릴 사람이 없다면 안에서 두드려야 합니다.

6. 교회가 할 수 있는 세 가지

  1. 피해자 전수조사. 호텔에서 무릎 꿇고 위로금을 건넨 것은 사과의 한 형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사는 아닙니다. 누가 얼마나 다쳤는지 모르면 회복도 없습니다. 조사는 당회가 아니라 노회나 외부 기관이 해야 합니다.
  2. 원로 추대의 재검토. 원로목사는 공동체가 그 사람의 사역 전체를 본받을 만하다고 공적으로 선언하는 자리입니다. 피해가 확인된 지 한 달 만에 그 선언을 했다면, 공동체는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명예를 택한 것입니다.
  3. 강단의 기준을 세상 기준 이상으로. 회사에서 징계받을 말은 강단에서도 허락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의 말이 교회 밖에서도 말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세상을 향해 하는 모든 말, 곧 복음조차 속이 빈 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출처


관련 글: 「니체에게 답하다 — 쓰고 있는 책의 머리말을 먼저 공개합니다」


발행 2026-10-06 · 최종 수정 2026-10-06